도윤에게 전화한 건 애들을 모두 보낸 뒤였다.
신호가 길게 갔다. 안 받으면 메시지만 남겨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전화가 연결됐다.
“PD님.”
수화기 너머가 조금 시끄러웠다. 누군가 도윤의 이름을 불렀고, 도윤이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입을 열려다 기다렸다.
문 닫히는 소리가 난 뒤에야 그가 다시 말했다.
“네. 말씀하세요.”
“평가위원 명단 봤어.”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늦었네요.”
“그걸 왜 해?”
묻고 나니 말이 짧았다. 도윤도 잠깐 조용해졌다.
“연습생 평가요?”
“네 일정도 바쁠 텐데.”
“오후에는 비어 있어요. 회사에서도 가능하다고 했고요.”
나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옆에는 네 명의 평가표와 오늘 촬영한 영상이 나란히 떠 있었다.
“강 PD님이 직접 연락하셨어?”
“처음에는 그쪽 제작팀 통해서요. 나중에 강 PD님한테도 전화 왔어요.”
“무슨 얘기 하셨어?”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봐주면 좋겠다고요.”
그 뒤에도 무슨 말을 했을 것 같았다. 도윤은 먼저 덧붙이지 않았다.
“내가 맡는 팀 있는 건 알고?”
“네. 자료에 PD님 성함 있던데요.”
나는 가만히 화면을 봤다.
도윤이 내 눈치를 살피듯 말을 이었다.
“제가 가면 불편하세요?”
“그런 건 아니야.”
“그러면 갈게요.”
대답이 빨랐다.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막상 통화가 되니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애매했다. 우리 팀이 남들보다 연습을 늦게 시작했다는 얘기를 하면 미리 사정을 봐달라는 말처럼 들릴 것 같았다.
가만히 있으려니 도윤에게 내가 왜 전화했는지 설명이 안 됐다.
“내가 네 데뷔 때 작업했잖아. 그건 다른 분들도 알고 계셔?”
“네. 그래서 두 팀 다 같은 질문 받고 평가한다고 들었어요.”
나는 조금 안심했다.
“나한테 미리 들을 건 없어. 편하게 보고 얘기해.”
“그럴 생각이었어요.”
말이 겹쳤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도윤이 작게 웃었다.
“PD님이랑 했던 작업 중에 안 좋은 것도 있었잖아요.”
“있었지.”
“그러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도윤은 그런 얘기를 할 때도 상대를 곤란하게 만드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았다.
레브온 데뷔 앨범을 만들 때, 그는 녹음이 끝나고도 모니터 앞에 오래 앉아 있었다. 리더니까 먼저 끝내야 한다며 괜찮은 테이크를 골라달라고 했다가, 정작 마음에 걸린 부분을 넘기지 못했다.
한 번만 더 하자는 말을 누구에게 해야 할지 몰라 나를 보고 있었던 얼굴이 떠올랐다.
“너는 무슨 일 없고?”
내가 묻자 도윤이 바로 답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다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 저는 잘 지내요.”
“들어가 봐. 사람 기다리겠다.”
“PD님은요?”
“나는 작업실.”
“오늘도 늦게까지 하세요?”
시계를 봤다. 벌써 아홉 시가 넘었다.
“정리만 하고 가려고.”
“그럼 정리만 하세요.”
나는 웃음이 났다.
“알았어.”
“정말요.”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한 번 더 났다. 이번에는 도윤도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작업 화면을 봤다.
정리만 하겠다고 했으니, 뭘 새로 켜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오늘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봤다.
결국 비슷한 일이었다.
도윤이 평가에 온다는 말을 전하자 가람이 눈을 크게 떴다.
“레브온 차도윤 선배님이요?”
“응.”
“PD님이 어떻게 아세요?”
“데뷔 앨범 때 같이 작업했어.”
가람이 나를 보다가 입을 조금 벌렸다.
“아, 그러면 저번에 연락 온 한이준도…….”
“응. 네가 생각한 그 한이준 맞아.”
“저 그때 동명이인인 줄 알았는데.”
세온도 가사지를 넘기던 손을 멈췄다.
“레브온 데뷔 앨범 하신 거예요?”
“응. 녹음도 같이 했고.”
가람은 뭔가 더 물으려다가 가사지를 내려다봤다.
“잠깐만요. 그러면 저희 이걸 차도윤 선배님 앞에서 부르는 거잖아요.”
도린이 자기 자리에 서며 말했다.
“그러니까 연습하자.”
가람이 얼른 일어났다.
“나도 하려고 했어.”
나는 반주를 재생했다.
음악이 시작되기 직전, 가람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 앞에서 이걸 한다고.”
도린이 정면을 보며 답했다.
“못 해도 앞에서 하는 거고.”
“그러니까 잘해야지.”
가람이 스탠드를 잡았다가 손을 뗐다.
그날 첫 녹음에서 가람은 가사를 두 번 틀렸다.
도윤이 온다는 얘기는 조금 늦게 해줄 걸 그랬다.
그 뒤 며칠은 비슷하게 흘렀다.
학교가 끝난 애부터 왔다. 네 명이 모이기 전에는 개인 파트를 보고, 다 모이면 곡을 이어서 불렀다. 해진은 카메라를 옮겨가며 찍었고, 나는 녹음을 했다.
처음에는 틀린 곳을 내가 멈췄다.
며칠 지나자 가람이 먼저 손을 들었다. 도린은 녹음을 듣다가 자기 파트만 한 번 더 하겠다고 했고, 세온은 목이 굳기 전에 잠깐 쉬어도 되냐고 물었다.
리에는 동선표 대신 가사지에 표시를 늘려갔다. 자기 파트뿐 아니라 옆 사람의 마지막 음절에도 작은 선이 그어졌다.
매일 좋아지지는 않았다.
전날 잘된 곳이 다음 날에는 안 됐다. 도린은 발음에 신경 쓰다 첫 박을 놓쳤고, 세온은 녹음할 때 괜찮았던 후렴을 카메라 앞에서 다시 힘줘 불렀다.
가람은 어느 날 연습이 끝난 뒤 영상을 보지 않겠다고 했다.
“오늘은 제가 봐도 별로예요.”
나는 화면을 닫았다.
“내일 보자.”
그 말에 가람이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다음 날 가람은 자기 가사에 말을 몇 개 적어왔다. 노래 가사가 아니라, 그 문장을 누구에게 말하는지 적은 메모였다.
다 보여주지는 않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종이를 다시 접었다.
평가 이틀 전, 최종 음원을 보냈다.
메일을 전송하고 나서도 한동안 첨부 파일이 맞는지 확인했다. 이름도, 날짜도, 재생 시간도 맞았다.
이제 반주는 더 만지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 연습 영상을 보다가 다시 프로젝트를 열 뻔했다.
해진이 옆에서 내 손을 봤다.
“어디 바꾸게요?”
“후렴 들어갈 때 조금 허전해서요.”
“애들 호흡은요?”
“거긴 그대로 두고 악기만…….”
말하다가 멈췄다.
해진이 영상의 같은 구간을 다시 틀었다.
“지금 저 빈 데 보고 가람이가 들어가잖아요. 소리 채우면 타이밍도 달라질 수 있어요.”
나는 가람의 얼굴을 봤다.
입을 다물고 세온의 끝을 기다리다가, 반주가 올라오기 전에 시선을 들었다. 며칠 전에는 자꾸 웃거나 입술을 움직이던 구간이었다.
“그러네요.”
“PD님 혼자 들으면 비어도, 애들 서 있으면 달라요.”
나는 작업 창을 닫았다.
해진이 휴대전화를 챙기며 말했다.
“오늘 녹음 끝나면 가세요. 밤에 들으면 또 손대고 싶어질 거예요.”
“알아요.”
“아시는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대답 대신 노트북 덮개를 내렸다.
평가 전날에는 실제 평가실을 삼십 분 쓸 수 있었다.
연습실보다 작았다. 벽 한쪽에 심사위원용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맞은편에는 마이크 스탠드 네 개가 서 있었다.
멤버들은 들어오자마자 목소리를 줄였다.
가람은 자기가 설 자리를 찾다가 바닥 표시를 확인했다. 리에는 스탠드 높이를 맞췄고, 세온은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
도린은 테이블 쪽을 봤다.
“저기 앉으세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도린이 마이크를 자기 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나는 음향 담당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노트북을 연결했다.
“한 번은 소리 확인하고, 한 번은 실제처럼 해볼게요.”
반주가 나오자 가람의 눈이 움직였다.
스피커 소리가 연습실과 달랐다. 자기 목소리가 가까이 돌아오지 않으니 평소보다 크게 시작했다.
첫 후렴에서 세온이 힘을 더 썼고, 리에는 옆을 보느라 진입이 늦었다.
나는 중간에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부른 뒤 가람이 입술을 적셨다.
“여기서는 제 목소리가 잘 안 들려요.”
음향 담당자가 모니터 스피커를 조정했다.
나는 네 명을 가까이 불렀다.
“더 크게 부르려고 하지는 마. 반주 소리부터 다시 확인하자.”
세온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은 아직 가사지를 쥐고 있었다.
두 번째에는 조금 나았다.
그래도 연습실에서 마지막으로 찍었던 영상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화면의 재생 시간을 봤다. 아직 조금 여유가 있었다.
후렴 앞을 더 단순하게 만들면 세온이 편할 것 같았다. 도린의 끝을 짧게 정리하고, 가람의 진입도 뒤로 미루면 리에가 옆을 덜 봐도 됐다.
어렵지 않은 수정이었다.
예전에도 평가 직전에는 그렇게 했다. 불안한 부분을 줄이고, 가장 안정적으로 부르는 사람에게 조금 더 맡겼다.
“여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바꿔보자.”
내가 후렴 앞을 가리키자 네 명이 종이를 들었다.
“가람이는 이 끝을 짧게 하고, 리에는 들어오는 걸…….”
말하다가 멈췄다.
가람은 바로 표시하려고 펜을 들고 있었다. 세온도 내 손끝을 보고 있었다.
리에는 자기 가사지와 도린 것을 번갈아 봤다.
“그러면 어제 맞춘 데도 바뀌어요?”
“조금. 지금보다 덜 급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세온이 종이를 내려다봤다.
“저 때문이에요?”
“아까 후렴에서 힘이 좀 들어갔잖아.”
“네. 그런데 앞부분이 어려워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나는 세온을 봤다.
“처음에 제 목소리가 작게 들려서 더 불렀어요. 뒤에서도 계속 그렇게 됐고요.”
가람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저도 첫 줄 크게 했어요.”
도린은 가사지를 접지 않고 두 손으로 잡았다.
“PD님, 이거 바꾸면 제가 끝나는 데도 달라져요?”
“맞춰봐야 해.”
도린이 종이에 표시된 선을 엄지로 문질렀다.
“저 지금 거는 어디서 끝내야 하는지 알아요.”
나는 노트북 쪽을 봤다.
수정하면 나아질 수도 있었다. 그 정도의 판단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곡이고, 며칠 동안 네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으니까.
다만 지금 수정하는 이유가 애들 때문인지, 내가 불안해서인지는 조금 더 생각해야 했다.
해진이 시계를 확인했다.
“한 번 더 할 시간 있어요.”
나는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그럼 그대로 해보자. 방금 소리 바뀐 것만 확인하고.”
가람이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놨다.
나는 심사위원 테이블 끝에 앉았다.
가까이서 볼 때보다 네 사람이 작아 보였다. 마이크 스탠드가 얼굴을 조금 가렸고, 가사지를 내려놓으니 손이 어색하게 남았다.
도린은 한 손을 옆으로 내렸다. 가람은 자기 손을 봤다가 따라 내렸다.
세온이 리에 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뭔가 말했다. 리에가 짧게 끄덕였다.
반주가 시작됐다.
나는 이번에는 손가락으로 박자를 세지 않았다.
가람의 첫 줄이 나왔다. 조금 전보다 소리가 작았지만 말은 더 잘 들렸다. 도린이 뒤를 받아 부르고, 끝에서 고개를 조금 돌렸다.
리에는 제때 들어왔다.
후렴 앞에서 세온이 숨을 골랐다. 어깨가 올라가는 걸 보고 나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첫 음이 나왔다.
세온은 두 번째 문장까지 무리 없이 이어갔다.
아주 깨끗한 테이크는 아니었다. 마지막 후렴에서 가람의 자음이 튀었고, 도린은 카메라를 보다가 시선을 한 번 놓쳤다.
그래도 노래는 끝까지 갔다.
음악이 끝난 뒤에도 잠깐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가람이 먼저 나를 봤다.
“PD님, 이번 거는 어땠어요?”
나는 녹음 파일을 저장했다.
“이걸로 하자.”
가람이 옆의 세온을 봤다. 세온은 입술을 다문 채 웃었고, 리에는 가사지 모서리를 맞췄다.
도린이 물었다.
“안 바꿔요?”
“응. 오늘은 여기까지.”
나는 케이블을 뽑았다.
평가 당일, 대기실에는 우리보다 A팀이 먼저 와 있었다.
복도에서 마주치자 양쪽이 어색하게 인사했다. 누구도 상대에게 무슨 말을 더 걸지는 않았다.
나는 애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진행 담당자에게 순서를 확인했다.
우리가 두 번째였다.
“앞 팀 끝나면 바로 준비할게요. 음원은 어제 확인한 파일 맞죠?”
“네.”
담당자가 목록을 보여줬다.
파일 이름 옆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는 한 번 더 확인하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가람은 물을 마시고 있었다. 세온은 가사지를 펴지 않은 채 무릎에 올려뒀고, 리에는 도린의 소매 끝을 보고 있었다.
“언니, 여기 접혔어요.”
도린이 팔을 내밀자 리에가 소매를 펴줬다.
나는 문 옆에 가방을 놓았다.
“우리 두 번째야.”
가람이 물병 뚜껑을 닫았다.
“앞 팀 소리 들려요?”
“문 닫으면 잘 안 들릴 거야.”
도린이 가사지를 세온 옆에 내려놨다.
“안 듣고 있으면 안 돼요?”
“그래도 돼.”
나는 문을 닫았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멈췄다. 잠시 뒤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도윤이 서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머리가 짧았다. 화면에서 보던 무대 화장도 없어서, 처음 녹음실에 들어오던 때의 얼굴이 잠깐 겹쳤다.
그가 내 뒤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안쪽에서 의자 움직이는 소리가 한꺼번에 났다.
도윤이 다시 나를 봤다.
“시작 전에 인사만 드리려고요.”
“응. 와줘서 고마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멤버들에게도 짧게 인사한 뒤 물러섰다.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 덧붙였다.
“있는 그대로 봐줘.”
도윤이 걸음을 멈췄다.
“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잘 듣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을 닫았다.
돌아서자 가람이 손에 든 물병을 꽉 쥐고 있었다.
“PD님.”
“응.”
“저 지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요.”
세온이 옆에서 작게 말했다.
“나도.”
도린은 목을 한 번 돌리고 자기 자리를 찾았다. 리에는 발을 바닥에 가지런히 놓았다.
나는 네 사람 앞에 앉았다.
“한 번만 길게 내쉬자. 들이마시는 건 알아서 되니까.”
가람이 먼저 숨을 내쉬다가 웃었다.
“저희 지금 다 같이 이상해요.”
“지금은 괜찮아.”
나는 가람이 내려놓은 물병을 옆으로 옮겼다.
복도 너머에서 첫 번째 팀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