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린은 자기 목소리가 나오는 동안 가사지를 내려다봤다.
어제 녹음한 첫 후렴이었다. 시작은 괜찮았다. 첫 음도 맞았고, 생각보다 소리가 잘 뻗었다. 다만 두 번째 문장부터 끝이 짧아졌다. 마지막 음절에서는 목소리보다 숨이 먼저 들렸다.
나는 재생을 멈추지 않았다.
옆에 있던 세온도 말없이 끝까지 들었다.
녹음이 끝나자 도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부를 때는 저렇게 안 들렸는데.”
“노래할 때 들리는 거랑 녹음한 건 좀 다르지.”
“첫 줄은 괜찮죠?”
“응. 그런데 그다음까지 이어 부를 수 있어야 해.”
도린이 가사지에 적힌 자기 이름을 봤다. 아직 확정하지 않은 곳이라 연필로 써놓은 이름이었다.
나는 지우개를 집지 않았다.
“첫 후렴은 세온이가 가는 게 좋겠어. 뒤쪽은 더 들어보고.”
도린은 대답하기 전에 녹음기를 봤다.
한 번 더 들려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가사지를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럼 앞에 제 파트는 그대로예요?”
“응.”
“거기는 다시 녹음할게요.”
“어디가 걸려?”
“끝에 말이 안 들려요.”
나는 해당 부분을 찾았다.
이번에는 도린이 먼저 손가락으로 위치를 짚었다.
평가곡 작업을 시작한 지 사흘째였다.
전날까지는 파트를 나누는 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오늘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할 생각이었다. 해진과도 오후에 함께 보기로 했다.
나는 연습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네 명이 다 모이는 시간은 짧았고, 오늘을 놓치면 내일 또 같은 부분부터 시작할 것 같았다.
가람은 바닥에 놓인 테이프를 발끝으로 눌러 붙였다. 어제 임시로 표시한 위치가 조금 들떠 있었다.
“PD님, 이거 그대로 쓰죠?”
“해진 선생님 오시면 확인하고.”
“저 이제 안 보고도 찾아가요.”
가람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자기 자리에 섰다. 도린이 그 발끝을 내려다봤다.
“옆이야.”
가람이 한 칸 옮겼다.
“아직 보고 가야겠다.”
나는 웃으며 노트북을 연결했다.
리에는 태블릿에서 동선표를 열었고, 세온은 서서 작게 첫 음을 확인했다. 전날보다 준비하는 데 시간이 덜 걸렸다.
그때 제작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서경 씨, 공지 확인했어요?”
나는 스피커에 꽂으려던 케이블을 내려놨다.
“아직이요. 지금 애들이랑 시작하려고요.”
“평가 방식 확정됐어요. 메일로 보냈으니까 보고 진행해요.”
통화가 끝난 뒤 메일을 열었다.
첨부 파일은 한 장이었다.
나는 첫 줄부터 다시 읽었다.
단체곡 평가: 고정 마이크 사용. 안무 및 대형 이동 없이 진행.
아래에는 보컬 전달력, 표현, 멤버 간 조화를 중점적으로 확인한다고 적혀 있었다. 개인 특기 평가는 이번에 진행하지 않는다는 문장도 있었다.
같은 내용을 두 번 읽고 나서 제작팀장에게 다시 전화했다.
“이번에는 춤을 아예 안 보는 건가요?”
“네. 안무는 다음 단계에서 따로 볼 거예요.”
“촬영도 같이 하죠?”
“상반신 위주로요. 얼굴하고 소리를 먼저 확인하려고.”
“두 팀 다 동일하고요?”
“그럼요.”
나는 해진과 잡아둔 시간을 봤다.
“음원 편곡은 말씀드린 대로 진행해도 되죠?”
“그건 괜찮아요. 춤 안 춘다고 연습 줄이는 건 아니죠?”
“아뇨. 확인하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전화를 끊자 가람이 내 손을 봤다.
“또 바뀌었어요?”
넷이 모두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첨부 파일을 화면에 띄웠다.
“이번 평가에는 안무가 빠진대.”
가람이 화면 가까이 왔다.
“서서 노래만 해요?”
“응. 지정한 위치에서. 마이크는 스탠드 쓰고.”
세온이 가사지를 조금 내려놨다. 리에는 열어둔 동선표를 한참 보고 있었다.
도린은 바닥에 붙은 테이프를 내려다봤다.
“개인 특기도 안 해요?”
“이번에는 안 한대.”
“왜 지금 알려줘요?”
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나도 방금 받았어.”
도린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대로 가사지를 접더니 벽 쪽으로 걸어가 물을 마셨다.
가람이 그 뒤를 보다가 내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 어제 한 거 다 빼요?”
“이동은 빼야 해. 노래는 그대로 쓸 수 있고.”
“중간에 자리 바꾸는 데도요?”
“응.”
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끝으로 눌러 붙였던 테이프가 이번에는 잘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해진에게 공지를 전달하고 전화를 걸었다.
해진은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왔다.
들어오자마자 공지부터 다시 확인했다. 멤버들이 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상반신이면 손동작은 확인해야겠네요.”
“고정 마이크 세팅은 평가실에서 해준다는데, 연습용은 두 개밖에 없대요. 나머지는 빌려온다고 했어요.”
“일단 두 개로 번갈아 해도 돼요. 자리가 어디까지 잡히는지 보고요.”
도린이 가사지를 내려놨다.
“선생님.”
해진이 돌아봤다.
“팔 쓰는 건 돼요?”
“아직 그 범위까지는 안 나왔어. 그래도 춤으로 보일 만큼 하지는 않을 거야.”
도린이 잠깐 망설였다.
“가만히 있으면 더 이상할 것 같은데.”
“한 번 찍어보자. 보고 얘기하면 돼.”
해진이 휴대전화를 거치대에 놓았다. 가로 화면을 확인하다가 세로로 돌려 멤버 한 명씩 잡았다.
“먼저 자기 파트만. 움직이는 건 신경 쓰지 말고.”
가람부터 카메라 앞에 섰다.
반주가 나오자 익숙하게 시선을 맞췄다. 그런데 평소처럼 몸을 돌리려다 멈추는 바람에 다음 단어가 늦었다.
“아, 다시요.”
가람이 먼저 손을 들었다.
“찍은 건 보고.”
해진이 화면을 보여줬다.
가람은 자기 얼굴을 보더니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저 왜 저렇게 웃어요?”
“어떤데?”
“너무 아무 일 없는 사람 같아요.”
그 말에 세온이 웃음을 참았다. 가람이 세온을 봤다.
“너도 알지? 나 지금 되게 신나 보이지?”
“응. 가사는 아닌데.”
해진은 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본 게 맞아. 노래 시작하기 전부터 웃고 있으니까 뒤에 바뀌는 게 안 보여.”
가람이 다시 화면을 봤다.
“그럼 처음에는 안 웃어볼게요.”
두 번째에는 표정이 너무 굳었다.
가람이 영상을 확인하고 길게 숨을 뱉었다.
“중간이 없네.”
나는 가람의 가사지를 가져왔다.
“여기서 무슨 말 하는 것 같아?”
“먼저 가도 된다고요.”
“정말 가도 된대?”
가람이 가사를 한번 소리 내 읽었다.
“아닌 것 같은데요.”
“그럼 그렇게 말해봐. 노래 말고.”
가람은 카메라를 보지 않고 작게 읽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들렸는데, 뒤의 문장에서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그 말투를 녹음해뒀다.
도린은 카메라 앞에 서자 어깨부터 굳었다.
노래는 어제보다 정확했다. 연습한 부분의 발음도 잘 들렸다. 다만 자기 파트가 끝난 뒤 시선이 옆으로 갔다.
해진이 영상을 돌렸다.
“여기 봐봐. 네 파트 끝나도 화면에서 없어지는 게 아니야.”
도린이 화면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찍었을 때는 끝까지 카메라를 봤다. 눈을 떼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너무 잘 보였다.
가람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해진이 물었다.
“어땠어?”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린이 답했다.
“춤출 때는?”
“동작이 있으니까요. 다음에 볼 데가 정해져 있고.”
나는 그제야 도린이 왜 이동하는 위치를 먼저 알고 싶어 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가만히 세워놓는 게 도린에게는 더 어려웠다. 몸이 할 일을 잃으니 시선까지 갈 곳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계속 정면 볼 필요는 없어.”
해진이 말했다.
“옆 사람 파트일 때는 그쪽 봐도 돼. 네가 듣고 있다는 게 보여도 괜찮아.”
“그냥 봐요?”
“응. 대신 카메라 피하려고 돌아보는 건 본인도 알잖아.”
도린이 대답 대신 영상을 다시 눌렀다.
나는 그 옆에 앉아 끝까지 기다렸다.
세온은 고정 마이크 앞에서 노래하기가 더 편하다고 했다.
숨도 덜 찼다. 후렴 첫 줄이 안정되자 본인도 얼굴이 조금 풀렸다.
문제는 자기 파트가 아닐 때였다.
세온은 계속 입으로 가사를 따라갔다. 리에의 차례에도, 가람이 짧게 랩을 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해진이 영상을 보여주자 세온이 입가를 만졌다.
“저 계속 부르고 있네요.”
“연습할 때 남의 파트도 다 부르지?”
“혹시 놓칠까 봐요.”
“놓치면 네가 대신 불러주려고?”
세온이 잠깐 웃었다.
“그건 아닌데…….”
나는 반주를 끄고 말했다.
“세온아, 아까 리에가 어디서 끝냈는지 기억나?”
세온이 가사지를 봤다.
가사에 적힌 위치는 알았지만, 방금 어떻게 불렀는지는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이번에는 따라 부르지 말고 들어봐.”
리에는 자기 차례가 되자 가사지를 내려놓았다.
첫 문장을 부르고, 두 번째 문장으로 이어졌다. 세온은 입을 다문 채 듣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리에가 세온을 봤다.
“아까보다 길게 했어요.”
세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뒤에 더 남았어.”
리에가 가사지 끝에 작은 선을 그었다.
나는 그 선을 봤다.
멤버끼리 서로의 끝을 확인하는 데 꼭 내 말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해진이 잠깐 다른 수업에 간 사이, 나는 편곡을 다시 열었다.
안무가 빠지면 움직임을 위해 비워둔 구간이 어색해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전부 소리로 채울 수는 없었다.
작업하는 옆에서 도린이 가사지를 들고 서 있었다.
“물어볼 거 있어?”
“저 어제 수업 끝나고도 연습했거든요.”
나는 손을 멈췄다.
“춤?”
“네.”
도린은 종이 모서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후렴에서 앞으로 나오는 데까지 했어요. 선생님이 여기 더 써도 된다고 해서.”
“응.”
“그거 하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노래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이렇게까지 표정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괜히 다음에는 춤을 보지 않겠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다음 평가 방식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지금 당장 안 쓰게 된 건 맞아. 나도 아까워.”
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노래할 때 네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건 아니야. 어제보다 발음 좋아졌잖아.”
“그래도 세온이처럼은 안 되는데요.”
“세온이는 네 파트 부르면 너랑 다르게 나와.”
도린이 내 화면을 봤다.
나는 오전에 녹음한 낮은 구간을 틀었다. 말에 가까운 소리였다. 어제 짧게 잘리던 끝도 이번에는 들렸다.
“이건 네가 계속 부르는 게 좋아.”
도린은 팔짱을 풀었다.
“춤을 못 추니까 여기로 뺀 건 아니고요?”
“그랬으면 어제부터 네 이름을 안 썼겠지.”
그제야 도린이 가사지를 내려다봤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어서 나는 작업을 계속했다. 옆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이거 하나만요.”
도린이 자기 파트 뒤를 짚었다.
“여기 끝나고 리에 들어오잖아요. 제가 끝을 짧게 하면 너무 떨어져 들려요?”
나는 둘의 녹음을 차례로 찾아 붙였다.
“같이 들어보자.”
저녁 연습을 끝내기 전에 네 명을 함께 찍었다.
빌려온 마이크 스탠드는 높이를 고정하는 손잡이가 뻑뻑했다. 가람이 돌리다 말고 도린을 봤다.
“언니, 이것 좀.”
도린이 손잡이를 풀어줬다. 가람이 자기 높이에 맞추고 고맙다고 하자, 도린은 리에 것까지 확인했다.
이번에는 가사지 없이 해보기로 했다.
카메라가 켜지자 네 명의 표정이 조금씩 굳었다.
나는 반주를 틀었다.
가람은 첫 문장을 웃지 않고 시작했다. 도린은 자기 파트가 끝난 뒤 리에 쪽을 봤고, 리에는 그 시선을 받고 조금 일찍 고개를 들었다.
세온이 후렴으로 들어갔다.
세온 혼자 잘 부르는 구간처럼 들릴까 봐 걱정했는데, 오늘은 다른 세 명도 화면에 남아 있었다. 가람은 낮게 박자를 탔고, 도린은 후렴의 끝을 기다렸다. 리에는 자기가 들어올 자리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매끄럽지는 않았다.
가람이 가사 하나를 바꿔 불렀고, 도린은 카메라를 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래도 음악이 끝났을 때 누구도 먼저 변명하지 않았다.
내가 영상을 재생하자 넷이 옆으로 모였다.
후렴 앞에서 가람이 화면을 가리켰다.
“여기 괜찮지 않아요?”
세온이 웃었다.
“네가 가사 바꾸기 전?”
“그거 말고. 여기.”
리에는 소리를 조금 키워도 되냐고 물었다. 도린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지막 음이 끝나자 도린이 손을 내밀었다.
“처음부터 한 번만 더 볼게요.”
나는 재생 위치를 앞으로 돌렸다.
이번에는 나도 끝까지 들었다.
이제 네 사람이 같이 서 있는 모습이 조금 보였다.
그때 제작팀 단체방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평가실 자리 배치도였다. 앞줄에 놓인 심사위원 이름을 확인하다가 손이 멈췄다.
차도윤 — 레브온 리더. 특별 평가위원.
곧이어 제작팀장의 메시지가 붙었다.
나는 화면을 한 번 더 읽었다.
전에는 저 자리에 도윤이 없었다.
“PD님?”
가람이 불렀다.
“도린 언니가 여기 다시 보고 싶대요.”
나는 휴대전화를 뒤집어놓고 영상을 틀었다.
문득 도윤이 자기 팀의 데뷔 평가를 기다리던 날이 생각났다. 심사위원 자리에 앉는 걸 누구보다 어려워할 사람이었다.
그가 왜 이번 제안을 받아들였는지 궁금했다.
연습이 끝나면 직접 물어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