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에서 A팀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가람은 물병 뚜껑을 다시 열었다가,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닫았다. 도린은 의자 등받이에 걸린 자기 가방을 바닥으로 내렸다. 세온이 가사지를 펴려다 말고 무릎 위에 놓았다.
리에는 닫힌 문을 보고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꾸고 가방에 넣었다.
“화장실 갈 사람 있어?”
가람이 손을 조금 들었다.
“다녀와. 아직 시간 있어.”
세온도 함께 일어났다. 둘이 나가고 나자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도린은 운동화 앞코로 바닥을 가볍게 눌렀다. 리에는 손가락을 폈다가 천천히 쥐었다.
나는 더 할 말이 있나 생각했다.
전날까지 한 말이 너무 많았다. 지금 뭘 덧붙이면, 애들이 무대에 올라가서도 그걸 기억하려고 할 것 같았다.
대기실 문이 열렸다.
가람이 들어오면서 나를 봤다.
“PD님, 복도에서는 조금 들려요.”
“앞 팀?”
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땠냐고 묻지 않았다. 가람도 먼저 말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뒤따라 들어온 세온이 가사지를 가방에 넣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노트북 덮개를 닫았다.
평가실 앞에 섰을 때는 A팀이 막 마지막 소절을 부르고 있었다.
문틈으로 들리는 소리가 깨끗했다. 높은 음에서도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고, 마지막에 함께 끝내는 자리도 잘 맞았다.
가람이 앞을 보고 입술을 눌렀다.
도린은 한쪽 귀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넘겼다.
우리가 기다리는 쪽으로 제작팀 직원이 다가왔다.
“다음 순서 준비할게요. PD님은 뒤쪽 참관석에 앉아주시면 됩니다.”
“네.”
직원이 문을 열었다. A팀 멤버들이 안쪽에서 나왔다.
서로 길을 비켜주느라 잠깐 동선이 겹쳤다. 세온이 뒤로 한 발 물러섰고, 상대 팀 한 명이 고맙다고 작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온 연습생은 손에 마이크를 쥐고 있었다. 반납하는 걸 잊은 모양이었다. 직원이 부르자 얼굴이 빨개져 돌아갔다.
가람이 그 모습을 보고 조금 웃었다.
웃음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우리 차례가 됐다.
평가실은 어제와 같았다.
마이크 스탠드 네 개, 뒤쪽 카메라, 벽에 붙은 시계.
심사위원석에 사람이 앉으니 공간이 더 좁아 보였다.
강태오가 가운데 앉아 있었다. 옆으로 제작팀장과 외부 보컬 트레이너가 있었고, 끝자리에 도윤이 자료를 보고 있었다.
도윤은 우리가 들어오자 고개를 들었다.
멤버들이 인사하는 동안 나는 벽 쪽 의자로 갔다. 해진은 먼저 와 있었다. 내가 앉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 상태는요?”
그가 낮게 물었다.
“아침에는 괜찮았어요.”
해진은 더 묻지 않고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람이 자기 자리에 섰다. 도린은 스탠드 높이를 조금 내렸고, 세온은 마이크와 입 사이의 거리를 확인했다.
리에는 발 위치를 맞춘 뒤 손을 내렸다.
제작팀장이 명단을 봤다.
“네 명, 자기소개부터 할까요?”
도린이 먼저 이름을 말했다.
가람은 평소보다 목소리가 높았다. 세온은 인사한 뒤 살짝 고개를 숙였고, 리에는 짧고 또렷하게 말했다.
보컬 트레이너가 리에에게 물었다.
“오늘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뭐예요?”
리에는 마이크 쪽으로 조금 가까이 갔다.
“제 파트 들어가기 전에 옆 사람 노래 듣는 거요.”
“음정이나 호흡 말고?”
“그것도 했는데요. 같이 부를 때 제가 기다리다가 늦어서요.”
트레이너가 자료에 뭔가 적었다.
이번에는 가람에게 질문이 갔다.
“랩이 주 포지션이죠?”
“네.”
“오늘은 노래도 꽤 있네요.”
가람이 잠깐 나를 볼 뻔하다가 정면을 봤다.
“네. 제 파트는 다 연습했어요.”
조금 뻣뻣한 답이었다. 그래도 변명하지는 않았다.
강태오가 음향 담당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어보죠.”
나는 의자에 붙여놓은 손을 떼지 않았다.
피아노가 시작됐다.
가람이 첫 소절을 불렀다.
연습실에서 마지막으로 들었을 때보다 소리가 얇았다. 입을 조금 덜 벌리고 있었고, 끝의 자음도 짧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가람은 다음 문장에서 마이크 쪽으로 얼굴을 조금 가까이했다. 볼륨을 억지로 올리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
도린이 뒤를 받았다.
낮은 음은 잘 들렸다. 끝음을 놓는 순간, 시선이 잠깐 아래로 갔다가 돌아왔다.
며칠 전 같았으면 거기서 가사지를 찾았을 것이다.
지금은 앞을 봤다.
리에는 도린의 끝이 사라진 뒤 들어왔다. 자기 목소리를 작게 만들지는 않았다. 소리가 크지는 않아도 문장이 끝까지 들렸다.
나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후렴 직전, 반주가 비었다.
세온의 어깨가 조금 움직였다.
높은 첫 음이 나왔다.
잘 맞았다.
두 번째 문장의 끝에서 음이 살짝 흔들렸다. 세온도 느꼈는지 눈썹이 움직였지만, 입을 더 크게 벌리지는 않았다. 다음 문장으로 이어갈 만큼만 숨을 썼다.
나는 속으로 박자를 세다가 멈췄다.
지금 내가 세도 들리지 않았다.
두 번째 벌스에서 가람이 랩을 시작했다.
앞부분보다 표정이 자연스러웠다. 말이 빨라지는 자리에서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카메라를 보고 꾸며낸 웃음이 아니라, 자기에게 익숙한 부분에 도착한 얼굴이었다.
도린이 짧게 끼어들었다.
가람의 밝은 목소리 뒤로 낮은 소리가 붙었다. 그 구간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내가 두 파트를 다 불렀다. 혼자 부른 가이드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는데, 둘이 나눠 부르니 주고받는 말처럼 들렸다.
도윤이 자료에서 눈을 들었다.
나는 그쪽을 보다가 바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리에는 자기 파트가 아닌 동안 세온을 보고 있었다. 세온이 고개를 조금 돌리자 정면을 봤다. 해진이 연습 때 여러 번 확인한 자리였다.
마지막 후렴이 시작됐다.
가람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마이크에 들어갔다. 바로 뒤의 짧은 받침 소리가 약하게 났다.
도린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자기 몫을 부른 뒤, 가람이 다시 들어올 자리를 기다렸다. 가람도 다음 마디에서는 제 소리를 찾았다.
끝부분에서 네 목소리가 겹쳤다.
아직 네 사람의 소리가 완전히 붙지는 않았다. 세온이 조금 앞에 있었고, 가람의 끝이 길었다. 그래도 처음 연습실에서 들었던 것처럼 각자 다른 곳으로 가고 있지는 않았다.
마지막 음이 끝났다.
리에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반주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른 멤버들과 함께 인사했다.
나는 손바닥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허벅지 위로 손톱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제작팀장이 음향 담당자에게 손짓했다.
반주가 완전히 꺼진 뒤 보컬 트레이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세온 씨.”
“네.”
“첫 후렴 두 번째 줄, 본인도 느꼈죠?”
“네. 끝에서 조금 흔들렸어요.”
“거기서 더 밀었으면 뒤도 힘들었을 거예요. 다음 줄 넘어갈 때는 잘 정리했어요.”
세온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다만 오늘 안무가 없었던 건 생각해야 해요. 움직이면서 같은 정도로 할 수 있는지는 더 봐야겠고요.”
옆에서 도린의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
트레이너가 이번에는 도린을 봤다.
“도린 씨는 말이 전보다 잘 들리네요.”
도린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
“네.”
“음역이 올라갈 때 소리가 뒤로 빠지는 건 여전히 있어요. 오늘은 그 구간을 많이 안 썼죠?”
“네.”
“파트를 잘 나눈 건 맞는데, 안 부른다고 없어지는 문제는 아니니까 계속 연습해야 해요.”
도린은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자기 파트 아닐 때 표정이 좀 굳어요.”
도린의 턱이 조금 내려갔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그대로 앉았다.
트레이너가 종이를 넘겼다.
“가람 씨는 시작할 때보다 랩 들어간 뒤가 좋아요. 앞에서는 틀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게 보여요.”
가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에 조금…… 긴장했어요.”
“리에 씨는 소리 자체는 맑은데 끝까지 더 들리게 해줘야 해요. 오늘은 앞사람이 잘 넘겨줘서 들어가기 편했을 텐데, 혼자서도 그만큼 낼 수 있어야 하고요.”
리에는 잠깐 생각한 뒤 답했다.
“네. 따로 연습해볼게요.”
네 사람 모두 지적을 받았다.
나는 그중 몇 개를 머릿속으로 다시 정리했다. 전부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었다. 열흘 동안 고치지 못한 것도 있었고, 연습에서는 됐다가 오늘 다시 나온 것도 있었다.
강태오가 펜을 들었다.
“편곡이 바뀌어서 원래보다 부르기는 쉬워졌네요.”
나는 그의 얼굴을 봤다.
그는 멤버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자기 파트는 잘 소화했어요. 다만 앞으로 다른 곡을 받았을 때도 이만큼 할 수 있느냐는 별개니까.”
제작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다음 단계에서 확인해야겠죠.”
해진이 옆에서 다리를 고쳐 앉았다.
나는 앞을 봤다.
쉬워진 건 맞았다. 내가 어렵게 만들어놓은 곳을 덜어냈으니까.
그 덕분에 도린의 발음이 저절로 좋아진 건 아니었다. 가람이 자기 파트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 것도, 리에가 옆 사람의 노래를 듣기 시작한 것도 편곡만으로 된 일은 아니었다.
그 말을 여기서 내가 해야 하나.
생각하는 동안 도윤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몇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제작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은 먼저 세온을 봤다.
“마지막 후렴 전에 옆을 봤죠?”
세온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네.”
“무슨 확인한 거예요?”
“가람 언니가 숨이 좀 급한 것 같아서요.”
가람이 세온을 돌아봤다.
도윤이 물었다.
“그래서 원래랑 다르게 한 게 있어요?”
“크게 바꾼 건 없고…… 제가 끝을 조금 먼저 정리했어요.”
도윤은 자료를 내려놨다.
“같이 부를 때 그런 거 보는 건 좋아요. 다만 남의 상태 보다가 본인 파트 놓치지는 말고요.”
“네.”
이번에는 도린 쪽으로 시선이 갔다.
“표정이 굳는다는 얘기 들었을 때, 본인은 어떻게 느꼈어요?”
도린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가람이 옆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세온도 도린을 보고 있었다.
“노래 틀릴까 봐요.”
도린이 답했다.
“춤출 때보다 신경 쓸 게 많았어요.”
“춤이 더 자신 있고요?”
“네.”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오늘은 끝까지 앞을 보려고 했죠?”
“네.”
“그건 보였어요.”
도린의 손이 가사지도 없는 허공에서 잠깐 멈췄다.
“앞을 보는 거랑 뭘 보여줄지는 또 다른 연습이라서, 다음에는 그걸 더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도린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도윤은 네 명을 한 번 보고 말을 이었다.
“각자 보완할 건 있는데, 다른 사람 파트에서도 무대가 이어지는 건 좋았어요. 네 명이 같이 연습했다는 건 느껴졌고요.”
가람이 입술을 꾹 눌렀다.
그 옆에서 리에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의자에 등을 붙였다.
조금 전부터 내가 하고 싶던 말을, 도윤은 자기 눈으로 본 것만 골라서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람 씨.”
가람이 급하게 답했다.
“네.”
“처음보다 뒤가 훨씬 좋았어요. 앞에서도 자기 파트를 그렇게 믿고 하면 좋겠어요.”
가람이 고개를 숙였다. 얼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도윤이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제작팀장이 시계를 확인했다.
“수고했어요. 결과는 두 팀 평가 정리해서 오후에 전달할게요.”
네 사람이 인사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갔다. 멤버들이 나올 때 함께 나가려고 했는데, 강태오가 불렀다.
“윤 PD님은 잠깐 남아주세요.”
도린이 문 앞에서 멈췄다.
“먼저 가 있어.”
내가 말하자 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람은 나를 봤다가 따라 나갔다.
해진도 잠깐 내 얼굴을 확인했다.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닫히자 강태오가 내게 손짓했다.
“앞으로 오세요.”
나는 심사위원 테이블 맞은편에 섰다.
제작팀장이 평가표를 모았다. 그 사이로 몇 군데 동그라미와 밑줄이 보였다. 점수를 읽으려 하지는 않았다.
강태오가 먼저 말했다.
“짧은 시간에 고생했어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네 명을 그대로 데뷔 후보로 올리는 건 좀 더 봐야겠고.”
나는 그를 봤다.
아직 결과를 발표한 것도 아닌데, 벌써 그다음 얘기였다.
“우선 오늘 평가 결과부터 듣고 싶습니다.”
제작팀장이 종이를 내려놨다.
“그건 조금 더 정리하고요. 서경 씨한테 확인할 게 있어요.”
“네.”
“이 곡, 다른 버전도 준비한 게 있어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처음 보낸 데모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거 말고요. 지금 네 명이 부른 버전에서 더 발전시킬 수 있는지.”
강태오의 손에 들린 펜이 멈췄다.
제작팀장이 말을 이었다.
“평가 영상 공개할 때 이쪽 버전도 쓰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요. 그러면 음원하고 제작 표기를 따로 정리해야 하니까.”
나는 가방 안의 노트북을 생각했다.
아직 손댈 곳이 많았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떠오른 수정도 몇 개 있었다.
하지만 먼저 확인할 게 있었다.
“네 명 목소리로요?”
제작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방금 부른 네 명으로요.”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평가표를 다시 봤다.
조금 전까지는 어느 이름 옆에 무슨 지적이 적혔을지만 궁금했다.
이제는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네 사람의 이름이 같은 장에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