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이번 생엔 내 이름으로 데뷔시킨다ILLUSTRATED NOVEL
EPISODE 05삽화 웹소설

이번 생엔 내 이름으로 데뷔시킨다

데모에는 없던
목소리.

회귀 · 엔터테인먼트 · 성장·약 15분·삽화 6장
비워낸 반주 위에서 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도린이, 아직 부르지 않은 후렴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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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온은 후렴 앞 구간을 다시 불렀다.

음이 올라가는 자리에서도 소리를 크게 벌리지 않았다. 끝까지 밀어붙였던 마지막 단어를 조금 일찍 놓자, 다음 문장에 들어가기 전에 숨이 들렸다.

나는 재생 위치를 옮겼다.

“한 번만 더. 방금처럼 하다가 후렴 첫 줄까지 가보자.”

세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드가 없는 반주 위로 목소리가 이어졌다. 후렴 첫 음은 맞았고, 두 번째 음에서 조금 흔들렸다. 그래도 앞에서 들었던 것처럼 목이 갑자기 잠기지는 않았다.

세온이 끝나자마자 입을 열었다.

“지금은 들어갈 때 괜찮았어요.”

“뒤는?”

“아직 힘이 좀 들어가요.”

나는 그 부분을 표시했다. 해진도 가사지 위에 짧게 메모했다.

“세온이는 후렴 들어가기 전에 동작 좀 비울게요. 마지막 두 박자만.”

“앞에서 계속 움직이다가요?”

“네. 혼자만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할 수 있어요.”

해진은 가람을 옆에 세우고 위치를 바꿔봤다. 가람이 앞으로 이동하는 동안 세온은 뒤에서 몸을 돌렸다. 팔을 크게 쓰지 않아도 두 사람의 자리가 바뀌자 시선이 움직였다.

도린이 거울로 그 모습을 보더니 물었다.

“저는요?”

“너는 반대쪽으로. 지금은 이동만 볼게.”

네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나는 후렴 앞부터 다시 틀었다. 해진이 바닥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숫자를 셌고, 세온은 자기 차례가 오자 짧게 노래했다.

아까와는 달랐다.

완벽하지는 않았다. 가람이 이동하면서 리에의 발을 밟을 뻔했고, 도린은 세온의 노래가 시작될 때까지 다음 동작을 기다렸다. 그래도 세온이 숨을 들이마실 자리는 생겼다.

해진이 손을 내렸다.

“일단 이쪽으로 해보죠.”

나는 방금 녹음한 부분을 저장했다.

키를 바꾸는 것만으로 해결하려 했으면 놓쳤을 것이다. 세온은 높은 음을 못 내는 게 아니었다. 그 음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었다.

01세온이 숨 쉴 자리

“세온아. 오늘 녹음한 거 저녁에 보내줄게. 혼자 더 하지는 말고.”

“아예 안 해도 돼요?”

“듣는 건 괜찮아. 오늘 여기서 많이 불렀잖아.”

세온이 가사지를 내려다봤다.

“내일 와서 안 되면 어떡해요?”

“그러면 내일 다시 보면 돼.”

쉽게 나온 말이었지만, 세온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말해놓고 다음 날 왜 아직 안 되냐고 물었다.

“오늘 된 거 내가 녹음해놨어. 어디까지 되는지 알았으니까 그다음부터 하면 돼.”

그제야 세온이 표시해둔 부분을 손가락으로 한번 누르고 가사지를 접었다.

세 시가 가까워지자 도린이 시계를 봤다.

일어나지는 않고 가방이 놓인 쪽만 두 번 확인했다. 내가 노트북을 닫자 그제야 물었다.

“오늘 여기까지예요?”

“너 수업 가야지.”

“조금 늦는다고 말하면 돼요.”

“안무 계속 볼 거 아니야. 나는 편곡해야 해.”

도린이 입을 다물었다. 먼저 가도 된다는 허락보다 더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던 모양이다.

가람은 운동화 끈을 다시 묶으며 해진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희 오늘 한 거 집에서 해와요?”

“영상 보내줄게. 대신 빨리 외우려고 하지 말고 위치부터 봐.”

“네.”

해진이 내 쪽을 봤다.

“음원은 어느 정도 바뀌어요?”

나는 화면에 표시한 구간을 짚었다.

“벌스는 가사를 좀 줄이고, 후렴 앞은 반주도 덜어낼게요. 길이는 아직 그대로 두려고요.”

“길이 바꾸게 되면 먼저 연락 주세요.”

“네. 내일 아침에 중간본 보낼게요.”

해진은 대답한 뒤 휴대전화로 연습실 바닥을 찍었다. 임시로 잡은 위치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가람이 세온에게 뭔가 속삭였다. 세온은 가방을 메다가 작게 웃었다.

“왜?”

내가 묻자 가람이 고개를 들었다.

“아뇨. 저희 이제 그냥 가도 되는지 얘기했어요.”

나는 시계를 봤다.

“가도 돼.”

“그럼 내일은 몇 시까지 오면 돼요?”

네 사람에게 학교와 수업 시간을 물어봤다. 한꺼번에 맞출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개인별로 먼저 보고, 넷이 함께하는 연습은 늦은 오후에 잡기로 했다.

일정을 보내주겠다고 하자 리에가 태블릿을 들었다.

“PD님, 이거 보내드릴까요?”

화면에는 곡의 순서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네 사람의 이름과 이동하는 방향이 작은 화살표로 표시돼 있었다.

“벌써 적었어?”

“헷갈릴 것 같아서요.”

해진이 옆에서 화면을 봤다.

“이거 나한테도 줘. 아직 바뀔 수는 있는데.”

리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파일을 보냈다.

02리에가 기록한 네 사람의 동선

도린이 마지막으로 가방을 멨다. 문 앞에서 멈추더니 나를 돌아봤다.

“내일도 노래부터 해요?”

“응. 오늘보다 좀 오래 할 거야.”

“아…… 네.”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해진이 그걸 듣고 말했다.

“도린이 춤도 볼 거야. 노래부터 끝내고.”

도린은 바로 대답했다.

“네.”

가람이 옆에서 웃었다.

“언니 방금 대답 빨라졌어.”

“가자.”

도린이 문을 열었다. 네 사람이 나간 뒤에도 바깥에서 잠깐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빈 연습실을 둘러봤다. 물병 하나가 거울 앞에 남아 있었다.

곧바로 문이 다시 열렸다.

“제 거요.”

가람이 물병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인사를 한 번 더 하고 문을 닫았다.

해진이 그쪽을 보다가 웃었다.

나도 웃음이 났다.

해진은 잠시 더 남았다.

나는 피아노 소리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곡을 다시 틀었다. 익숙한 가이드가 흘러나오자 손이 저절로 다음 위치로 갔다.

“이건 왜 넘겨요?”

해진이 물었다.

“반복이라서요.”

“첫 번째랑 두 번째에 같은 애가 서요?”

나는 손을 멈췄다.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건 파트 나누고 보려고 했어요.”

“그러면 일단 끝까지 들을게요.”

나는 재생 위치를 되돌렸다.

해진은 음악을 듣는 동안 별말이 없었다. 책상도 의자도 없는 연습실에서 둘이 바닥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으니, 예전 작업 때 받았던 전화가 자꾸 떠올랐다.

왜 곡 길이를 바꾸기 전에 연락하지 않았냐고 했다.

나는 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답했다. 당시에는 그 말이면 설명이 된다고 생각했다.

음악이 끝나자 해진이 가방을 당겼다.

“음원 바뀌는 거 보고 안무 정리할게요.”

“지난번에는 죄송했어요.”

해진이 지퍼를 잡은 채 나를 봤다.

“공연 직전에 길이 늘린 거요.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그때 다들 힘들었죠.”

“그래도 파일 보내기 전에 전화할 수는 있었어요.”

해진은 잠깐 나를 보다가 가방 지퍼를 닫았다.

“이번에는 연락 주시면 돼요.”

“네.”

그는 일어나면서 노트북 화면을 한 번 더 봤다.

“아까 앞부분 줄이겠다고 하셨잖아요.”

“네.”

“얼마나 줄이실지 모르겠는데, 너무 빨리 후렴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람이 앞에서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아서.”

나는 표시해둔 구간을 지우지 않고 옆에 메모를 붙였다.

“버전 두 개 보내드릴게요.”

“하나 먼저 주세요. 두 개 만들기 전에 얘기하면 되잖아요.”

나는 마우스를 쥔 채 해진을 올려다봤다.

그는 신발 뒤축을 고쳐 신고 있었다.

“안 그래도 시간 없는데.”

맞는 말이었다.

나는 메모를 고쳤다.

03해진에게 건넨 사과

작업실로 돌아와 문을 열었다.

책상 위에는 아침에 급하게 벗어놓은 안경이 있었고, 의자 등받이에는 카디건이 걸려 있었다. 출입 카드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게 반가워 문 앞에서 쓸데없이 한 번 더 찍어봤다.

짧은 확인음이 났다.

이번에는 안에 있는 내 물건부터 살폈다. 외장 하드 두 개와 헤드폰, 오래된 오디오 인터페이스.

가방을 내려놓고 오늘 녹음한 파일을 옮겼다. 날짜와 이름을 적고, 개인 저장장치에도 복사했다.

녹음을 하나씩 듣자 피곤한 게 느껴졌다. 회의실에서 눈을 뜬 뒤로 계속 누군가와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의자를 뒤로 밀고 눈을 감았다.

깜빡 졸았나 싶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강태오였다.

잠깐 화면을 보고 전화를 받았다.

“네.”

“작업실이지?”

“네. 왜요?”

“파일 하나 보냈어. 레브온 수록곡인데, 후렴만 좀 봐줘.”

메일함에 새 메시지가 떠 있었다.

레브온.

세 글자를 보자마자 이준이 보내온 과자 사진이 생각났다. 나는 메일을 열지 않고 휴대전화를 고쳐 쥐었다.

“언제까지요?”

“내일 오전.”

“저 평가곡 작업해야 해요.”

“후렴만이야. 네가 들으면 금방 알 거야.”

그 말에는 틀린 데가 별로 없었다. 정말 금방 알아들을 때가 많았다. 어디가 답답한지, 왜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 어떤 악기를 빼야 하는지.

문제는 알아듣는 시간과 고치는 시간이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금 시작하면 애들한테 줄 음원이 늦어져요.”

“그건 내가 일정 얘기해줄게.”

“제 평가는 그대로잖아요.”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나는 달력을 열었다. 비어 보이는 시간마다 이미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편곡, 녹음, 수정, 애들 넷을 함께 볼 수 있는 짧은 연습 시간.

“이번 주는 어렵습니다. 다른 분께 부탁해주세요.”

“너 레브온 작업 좋아하잖아.”

그랬다.

좋아해서 돌아오는 것도 있었다. 녹음실에 오면 새로 연습한 걸 들려주던 얼굴들, 첫 무대가 끝나고 온 메시지들.

그렇다고 오늘 할 일을 밀어도 되는 건 아니었다.

“좋아하죠. 그런데 지금은 먼저 맡은 게 있어서요.”

통화를 끝내고 나서도 메일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번에는 파일을 받지 않았다. 창을 닫고 평가곡을 열었다.

04먼저 맡은 일을 지키기로

곡을 처음 만들 때의 프로젝트에는 트랙이 서른 개 넘게 있었다.

피아노, 패드, 스트링, 퍼커션. 후렴을 크게 만들려고 앞에서부터 조금씩 소리를 쌓아놓았다. 하나씩 들을 때는 다 이유가 있었는데, 합쳐서 들으니 보컬이 계속 그 위를 넘어가야 했다.

세온은 가이드를 성실하게 따라 불렀다.

내가 힘을 준 곳에서 힘을 줬고, 숨을 빠듯하게 쓴 곳에서는 똑같이 버텼다.

나는 후렴 앞의 악기를 하나씩 껐다.

처음에는 너무 비어 보였다. 피아노를 다시 켰다가 줄이고, 길게 깔린 소리를 잘랐다. 빈 곳을 다른 악기로 채우려던 손을 멈췄다.

오늘 녹음한 세온의 목소리를 가져와 같은 위치에 놓았다.

앞을 덜어내자 후렴에서 이미 있던 드럼이 더 크게 들렸다. 볼륨을 올린 건 아니었다.

나는 가람이 골랐던 구간을 확인했다.

가이드에서는 음절을 길게 붙여놓았지만 가람은 짧게 끊어 읽을 때 더 좋았다. 말을 빠르게 넣을 자리가 생기면 뒤의 노래가 급해질 수도 있었다. 앞부분을 전부 줄이는 대신, 가람이 들어올 수 있는 몇 마디는 남겼다.

리에가 고른 자리는 반주를 더 비웠다.

도린의 파트를 생각하다가 의자에 등을 기댔다.

낮은 음이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래에 깔아놓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직 확인하지도 않은 고음 파트를 주고 해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낮은 멜로디와 조금 높은 멜로디를 따로 불러 녹음했다. 답을 못 정한 곳에는 물음표를 남겼다.

시간을 보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완성본은 아니었지만 내일 멤버들에게 들려줄 수는 있었다.

저장하려다가 파일명을 바꿨다.

〈NB03_평가용_구성수정_01〉

그다음에는 해진에게 중간본을 보냈다.

〈아직 가이드입니다. 후렴 앞 호흡 구간 확보했고, 전체 길이는 동일합니다. 동선에 걸리는 부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05네 목소리를 위한 편곡

보내고 나서야 배가 고팠다.

서랍을 열었는데 먹을 만한 게 없었다. 대신 휴대전화에 이준의 답장이 와 있었다.

〈파란 거 샀어요.〉

사진 속 장바구니에 같은 상자가 세 개 들어 있었다.

나는 화면을 보고 작게 웃었다.

하나만 사라고 답했다가, 이미 계산했을 것 같아 지웠다.

다음 날 오후, 넷이 모인 시간에 수정한 곡을 틀었다.

가람은 시작 부분부터 고개를 움직였다. 세온은 가사지를 보고 따라가다가 후렴 직전에 눈을 들었다.

리에는 자기 이름이 적힌 구간에서 종이와 화면을 번갈아 봤다.

도린은 팔짱을 끼고 끝까지 들었다.

음악이 끝나자 가람이 먼저 말했다.

“많이 다른데요?”

“멜로디는 거의 같아.”

“그런데 저희 거 같아요.”

말하고 나서 가람이 웃었다.

“아직 부르지도 않았는데 좀 그런가.”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혼자 밤새 만진 것보다 그 한마디에 피곤이 조금 풀렸다.

세온이 자기 가사지를 앞으로 내밀었다.

“PD님, 여기 들어가기 전에 쉬어도 되는 거죠?”

“응. 글자 하나 뺐어. 불러보고 어색하면 다시 바꿀 거야.”

“저는 이게 더 편할 것 같아요.”

리에가 구간 끝에 작은 표시를 했다.

“이 뒤에 도린 언니 들어와요?”

“지금은 그렇게 나눴어.”

도린은 그 말을 듣고 가사지를 봤다.

첫 벌스 뒤쪽과 후렴 앞의 낮은 구간에 자기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른 애들보다 분량이 적지는 않았다. 다만 도린이 원하는 자리는 아닌 모양이었다.

“PD님.”

“응.”

“후렴은 세온이만 해요?”

“일단은. 뒤쪽은 아직 같이 볼 거야.”

도린이 가사지를 한 번 접었다 폈다.

“저도 불러보고 싶어요.”

나는 도린을 봤다.

어제는 춤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오늘은 가사지의 가장 높은 곳을 손끝으로 짚고 있었다.

“어느 부분?”

도린이 첫 후렴을 가리켰다.

세온이 도린의 손가락을 따라 자기 가사지를 봤다.

나는 반주를 처음으로 돌리려던 손을 멈추고, 후렴 앞을 눌렀다.

“그래. 한번 들어보자.”

06도린이 고른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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